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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대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 소비자의 ‘시간’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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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8.29 05:57
 
〔대표기자 칼럼〕
 
유통시장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과거 유통산업의 경쟁은 누가 더 많은 상품을 매장에 진열하고, 더 넓은 유통망을 확보하며, 더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공급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 소비자의 구매 방식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소비자는 더 이상 많은 상품을 한꺼번에 사놓고 기다리는 것만을 원하지 않는다. 필요한 상품이 생겼을 때 필요한 만큼 사고, 가능한 한 빨리 받아보기를 원한다. 결국 리테일 산업의 다음 변화는 매장 진열대의 변화가 아니라 소비자의 일상적인 장바구니에서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흐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퀵 커머스다. 선도적인 소비자 인텔리전스 기업 NIQ가 발표한 ‘커머스 혁명: 동서양의 만남(The Commerce Revolution: Where East Meets West)’ 보고서를 보면 중국과 인도에서 퀵 커머스는 이미 새로운 유통 방식이 아니라 소비자의 일상적인 구매 방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조사 대상 소비자의 퀵 커머스 도입률은 중국이 83%, 인도가 82%로 세계 평균인 48%를 크게 웃돈다. 반면 유럽은 34%, 북미는 3%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단순한 국가별 배송 인프라의 차이라고 보기에는 격차가 크다. 이는 소비자들이 ‘얼마나 빨리 상품을 받을 수 있는가’를 바라보는 기대 수준 자체가 지역별로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의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중국에서는 조사 대상 소비자의 83%가 퀵 커머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시장 규모 역시 올해 1조 위안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기에 2025년 중국의 소포 처리량이 1990억 개에 달하면서 전년보다 약 14% 증가했다는 점은 단순히 소비자의 이용률만 높아진 것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물류와 풀필먼트 인프라가 상당한 수준으로 구축돼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소비자가 빠른 배송을 원한다고 해서 시장이 저절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의 기대를 실제 서비스로 연결할 수 있는 물류망과 재고관리, 지역별 배송 거점이 함께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인도 역시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인도의 퀵 커머스는 2025년 4분기에 전년 대비 68% 성장했으며, 5000개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는 다크 스토어 네트워크가 이러한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일부 점포에서는 하루 최대 1800건의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퀵 커머스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구매 목적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우유나 생수, 간식처럼 당장 필요한 상품을 소량으로 보충하는 ‘톱업(top-up) 구매’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보다 다양한 품목을 한 번에 담는 장바구니 구매로 확대되고 있다. 재구매율이 높아지고 주문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은 퀵 커머스가 단순한 긴급 배송 서비스가 아니라 소비자의 일상적인 쇼핑 습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국내 유통업계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퀵 커머스를 단순히 ‘몇 분 안에 배송하는 서비스’로 이해해서는 변화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변화는 배송 속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구매를 결정하는 순간과 상품이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과정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데 있다. 소비자가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플랫폼에서 상품을 발견하고, AI의 추천을 받아 구매를 결정한 뒤, 가까운 매장이나 물류 거점에서 상품을 받아보는 과정이 하나로 이어지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앞으로의 유통 경쟁은 매장과 온라인, 물류와 판매를 따로 나누는 방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발견과 거래, 재고와 풀필먼트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적절한 가격에 보여주고, 그 상품을 실제로 구매할 수 있도록 재고를 확보하며, 주문이 들어오는 순간 가장 가까운 거점에서 빠르게 배송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유통업체의 경쟁력은 이제 얼마나 많은 상품을 보유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소비자의 구매 의도를 얼마나 정확하게 읽고 그것을 실제 구매와 배송으로 연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있다. 새로운 채널이 성장한다고 해서 모든 브랜드가 함께 성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NIQ 자료에 따르면 브랜드들은 평균적으로 지출의 27.4%를 소셜 커머스에 배정하고 있지만, 58%의 브랜드가 여전히 1달러 미만의 ROI를 보고하고 있다. 소비자가 많이 이용하는 채널과 기업이 돈을 벌 수 있는 채널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유통업계가 단순한 거래량이나 이용자 수, 성장률만 보고 새로운 채널에 뛰어들 경우 오히려 비용 부담만 커질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 기업들이 고민해야 할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퀵 커머스에 진출할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 상품 가운데 어떤 상품이 어떤 소비 상황에서 퀵 커머스의 혜택을 가장 크게 받을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긴급하게 필요한 생필품과 계획적으로 구매하는 대용량 상품의 판매 방식이 같을 수 없고, 가격이 중요한 상품과 편의성이 중요한 상품의 유통전략도 달라야 한다. 결국 소비자가 왜 그 상품을 구매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새로운 유통전략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오프라인 매장의 역할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온라인 쇼핑이 확대된다고 해서 오프라인 매장이 단순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까운 곳에 위치한 오프라인 매장은 앞으로 중요한 물류 거점으로 재평가될 가능성이 있다. 소비자가 상품을 직접 확인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지역 소비자에게 상품을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재고 거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매장이 ‘상품을 진열하는 공간’이었다면 미래의 매장은 ‘상품을 경험하고, 주문하고, 배송하는 공간’으로 역할이 확장될 수 있다.
 
AI의 등장 역시 이러한 변화를 더욱 빠르게 만들고 있다. AI는 단순히 소비자에게 상품을 추천하는 수준을 넘어 어느 지역에서 어떤 상품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예측하고, 재고를 조정하며, 가격과 프로모션을 최적화하고, 가장 효율적인 배송 경로와 물류 거점을 선택하는 데까지 활용될 수 있다. 결국 AI와 퀵 커머스의 결합은 단순한 기술의 결합이 아니라 소비자의 행동을 예측하고 유통 시스템 전체를 움직이는 새로운 방식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NIQ의 에밀리 다롤 서유럽 사장이 지적한 것처럼 중국과 인도는 편의성이 더 이상 차별화 요소가 아니라 소비자의 기본적인 기대가 되었을 때 유통시장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기업에게 퀵 커머스는 진출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하는 선택지가 아니라, 어떤 상품과 어떤 소비자를 대상으로 어떻게 수익성 있게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결국 커머스의 미래는 더 빠른 배송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소비자가 언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순간에 적절한 상품을 가장 편리한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느냐가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다. 중국과 인도가 보여주는 변화는 우리에게 단순히 ‘배송을 더 빨리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의 생활 방식이 바뀌고 있으니 유통의 방식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신호에 가깝다.
 
유통산업의 중심이 매장의 진열대에서 소비자의 장바구니로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장바구니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이제 가격과 상품만이 아니다. 시간과 편의성, 그리고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상품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소비자의 구매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유통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은 반드시 가장 많은 매장을 가진 기업도, 가장 빠른 배송을 자랑하는 기업도 아닐 수 있다.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언제 필요로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구매하기를 원하는지를 가장 먼저 이해하고 그것을 상품·가격·재고·물류·서비스로 연결하는 기업이 새로운 유통시장의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다. 진열대의 시대에서 장바구니의 시대로, 이제 유통업의 경쟁은 상품이 아니라 소비자의 ‘시간’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mailnews7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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